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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내리기

성실의 출발점

오랜 타지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집에 들어와 '집밥'을 먹게 되었다. 아래 얘기는 모두 '엄마'와 '밥'과 관련된 얘기이다.

 

1.

 밖에서 살고 있는 누나가 오랜만에 집에 방문하게 되었다. 사정이 깊어 차마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지만, 그간 부모님과 많은 갈등 또한 존재했으리라. 누나에 '관한' 답답한 마음과 믿는 마음을 품고 있는 나는, 엄마 마음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누나가 집에 방문하게 되었을 때, 나는 좀 늦게까지 잠을 자고 있었다. 누나가 오자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아니, 우리가 차마 모두 먹지 못할 만한 양들을 엄마가 준비해오셨다. 너무 정성 들여서. 아니 어차피 다 먹지 못해 치울 거 왜 이리 많이 준비하시나?

 

2.

 같은 연구실 사람과 매일 배달음식을 먹었었다. 주로 음식은 달거나 맵거나 고기 위주의 음식이었다. 그러다 집에 오니 아니... 너무 순하고 채식 위주의 밥이다. 그리고 밤과 고구마. 내가 목메어서 싫다고 한 음식들도 자주 나온다. 이 나이에 반찬투정을 하긴 싫어서 참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밥에 밤이 얹혀 나왔다. 아니 왜 굳이 수고를 해서 맛없는 밥을 만드시나?

 

왜 굳이 엄마는 이런 수고를 감당하실까?

 그러한 의문점들과 엄마와의 다툼 끝에 변하지 않는 엄마의 그 '수고스러움'을 보고 답답한 마음이 커져갔다. 부끄럽게도 그리 성실하게 살지 않는 나는 그 날에도 늦게까지 잠을 자고 일어났다. 엄마가 준비하신 밥이 있었다. 그다음 날에도 늦게까지 잠을 잤다. 엄마가 준비하신 밥이 있었다. 그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러자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별로 하는 게 없는데도 왜 이리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하실까? 열심히 일하고 온 뒤에 이런 밥이 준비된 걸 보면 이해가 된다. 근데 왜 나한테 이 수고스러움을 감당하실까?

 

 하나님께서 성실하다고 하신다. 이런 하나님을 우리는 찬양한다. '아침에 주의 성실하심을 나타내시며...'라는 찬양처럼 매일매일 해가 일정한 속도로 돌고 봄 다음에는 가을이 아닌 여름이 오고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비가 내린 땅에는 새싹이 돋는다. 당연해 보이는 일이지만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알게 된다. 당연히 자연스레 되는 일은 없다. 매일매일이 성실하신 모습이다. 왜 이런 수고를 감당하실까?

 

하나님은 마찬가지로 왜 이런 수고를 감당하시나?

 

 엄마에 대한 많은 질문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우리에게 라면 먹으라고 픽 던져주고 가지 않았던 이유는 '차마 그럴 수 없어서'였다. 더 좋은 걸 해줄 수 있는데, 차마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조금 더 수고해서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수고하면 더 좋은 걸 먹일 수 있는데, 차마 그러지 않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엄마가 더 성실했던 이유는, 더 사랑해서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성실하게 햇빛을 비추고 콩 심은 곳에 콩이 열매 맺도록 이끄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해서다. 우리에게 아무 이유 없이 성실하시다. 매 순간의 호흡을 허락하시고 석양의 멋진 광경을 보게 하는 이유. 더 사랑해서다.

 

 사랑한다면 성실하게. 내일 나에게 주시는 하루를 성실하게. 이것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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