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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시대의 기독교

Tech Fashion, 그리고 Tech Style

#패션

"패션은 늘상 변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코코 샤넬은 패션과 스타일을 위와 같이 구분하였다. 매 시즌마다 여러가지 패션의 옷이 만들어지지만 결국 모두 사라지고, 어떠한 '풍'은 남게 된다. 댄디 룩, 히피 룩과 같은 어떠한 '풍'은 하나의 아이콘이 되어서 남는다. 급격하게 변하는 (혹은 변하게 만드는) 패션 시장에서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 터.

 

코코 샤넬 또한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림

이러한 '스타일'은 그림에서도 '화풍'이라고 불리운다. 작고 작은 군소 패션이 만들어져서 스타일이 생기는 건지는 몰라도, 그림 화풍에서도 특정 집단이 유력하게 사용되고 '화풍'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교과서에는 그러한 '화풍'의 특징을 요약해서 우리에게 전달한다.

 

#기술

과거 대학에 다니면서, 이상하리만큼 이공계 교수님들에게서는 무언가 삶에서 배울만한 깊은 것들을 찾기가 살짝 힘들었다. 삶의 지혜나 사람 냄새나는 배울만한 것들이랄까? 반면에 인문학 교수님들에게서는 그러한 부분들이 팍팍 느껴졌다. 진짜 찾고 배우고 싶은 '어른'을 발견하게 된 그런 느낌이랄까. 돌이켜보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러한 부분들이 느껴졌을까? (모든 교수님들에게 그런건 아니다)

 

인문학 분야의 교수님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인간에 대하여 공부한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움의 깊이가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변하지 않는 가치를 발견하기도 할 것이다. 삼십년이 지나도, 오십년이 지나도 인간에 대한 이해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반면에 '기술'분야는 그렇지 않다. 너무나도 빨리 흐른다. 특히 딥러닝 분야에서 일년 전 논문은 '옛 것'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피로한 사회 속에서 과연 이곳에서 연구하는 기술자들은 얼마나 빨리 피로해지고 지칠까. 계속 변하는 기술 속에서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찾고 싶은 것은 도태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리라.

 

'딥러닝'분야에서 인용수가 많을 수록 어찌보면 오래 살아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승자는 늘상 바뀐다. 전세계 어딘가에서 대학원생이 엄청난 논문을 내기도 한다. 인용수가 많아지고, 일종의 그 논문을 이용한 연구들, 즉 그 논문의 '화풍'을 따라하며 변하지 않는 캐논처럼 되어버린다. 그러나 또다시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금방 찬밥신세가 되기도 한다.

 

#테크 스타일

신호는 시그널과 노이즈로 구성된다. 이 둘은 상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구분되는데, 나에게 필요하면 시그널 그 외에는 모두 노이즈이다. 시그널과 노이즈는 상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구분된다. 기술에서 변하지 않는 무언가는 어떤것일까?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위에서 짧게 언급했듯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하나의 풍이 되기도 하니깐.

 

지금 내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확실한 답은 이것이다. 긴 글을 읽은 후 너무 어이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현실적인 답이다.

 

'변하지 않는 기술을 찾으며 의지하지 말고, 변하지 않는 진리인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고 따라가라.'

 

시그널과 노이즈. 우리에게 필요한 분별력.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참 시그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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